[태국역사]아픔의 마을, 치앙라이 도이 메살롱

2017. 12. 23. 04:53Super Thailand/태국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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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북부의 끝 치앙라이(Chiang Rai)의 산악마을 도이메살롱(Doi Mae Salong)의 역사 이전에 중국 내전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이른바 국공 내전(Chinese Civil War)이라 불리우는데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 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의 나라가 현재의 타이완, 즉 대만이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의 나라가 현재의 중국이다.


도이메살롱@super-traveler.com

내전이 한참이던 1949년. 중국 운남지역에서 공산당과 맞서 싸운 국민당의 국민혁명군은 후퇴하여 버마(미얀마)로 피신했는데 그 병력의 수가 무려 1만2천이라 한다. 버마의 국민당 잔당이 된 이들은 그 후 대만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으나 정치, 외교적 조치로 대만으로 귀환하거나 버마,태국,라오스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동지에서 원수로. 장제스와 마오쩌둥@google.com


그 배경은 아래와 같다.

버마를 지역기반으로 중국과 버마공산당 게릴라와 양쪽을 오고가며 힘겨운 전투를 이어가던 국민당 잔당이 미국과 대만의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잔당 처리를 목적으로 중국이 버마를 침공 할 수도 있고, 그런 중국에 버마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버마 정부가 버마공산당과 연합정부를 구상한다는 소문에 미국은 버마 및 동남아의 공산화 우려로 국민당 잔당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그러나 대만의 반대로 이 문제는 UN으로 옮겨 공론화 된다. 대만, 버마, 태국, 미얀마가 참여하는 4개국 위원회는 국민당 잔당은 태국을 거쳐 대만으로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송환을 거부한 국민당 잔당은 버마에 남게 된다. 위기를 느낀 버마는 결국 중국과 손을 잡고 국민당 퇴치에 나섰으며 병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던 국민당 잔당의 일부는 대만으로 귀환하고, 나머지는 앞서 말한것과 같이 버마와 태국. 그리고 라오스로 흩어지는데 그중 송환을 거부한 이들의 터전이 된 장소가 바로 치앙라이의 도이메살롱이다.


중국 국공내전 당시 일러스트@google.com



중국 국공내전 당시 일러스트@google.com


한때 이들은 아편을 재배하며 무기를 구입하였는데 미국의 압박과 더불어 태국 군사정부에도 골칫거리로 시민권을 대가로 이들을 태국화 하는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태국내 공산세력과의 전투에 용병으로 이용되는 등 그 비극적인 역사는 이어갔다.

눈앞에 중국 운남이란 고향땅을 두고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대만으로의 송환을 거부한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른다. 버마-태국-라오스의 험난한 산악지역에 터를 마련해 삶을 이어가며 고향땅을 그리워했을 그들의 마음을 이곳 도이메사롱 현지에 오니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것만 같다.

태국 북부의 아카족@google.com


미국과 대만의 이해관계에 이용당한 그들의 슬픔이 깃든 지역이지만 태국북부 특유의 멋진 산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스스로 조국이 태국이라 말을 하는 그들이면서도, 도이메살롱 골목 구석에는 중국식 만두 냄새가 여전히 짙게 깔려있다. 

또다른 피해자는 아카족 등 소수민족으로 이들의 역사는 다음에 소개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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